블루제이스, 18회 혈투 끝 패배… ‘WS 최장 이닝 타이’ 속 드러난 승부수와 숙제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LA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6시간 39분의 마라톤 끝에 5-6으로 무릎을 꿇었다. 기록과 전략이 얽힌 밤, 무엇이 희망이었고 무엇이 발목을 잡았을까.
6시간 39분의 서사: 경기 한눈에 보기
월드시리즈 3차전은 18회까지 이어진 끝에 다저스의 끝내기 홈런으로 마무리됐다. 초반은 다저스가 2-0으로 앞섰지만, 블루제이스가 4회초 역전 3점포를 포함해 대거 득점하며 전세를 뒤집었다. 이후 양 팀은 5회와 7회에 1점씩 주고받았고, 7회말 동점 홈런이 나오며 경기의 맥박은 완전히 연장전 페이스로 넘어갔다.
이날 경기는 WS 최장 이닝 타이라는 기록과 함께, 불펜 총력전의 교과서 같은 장면들이 이어졌다. 투수 교체 타이밍, 고의사구 전략, 수비 변칙 배치까지, 포스트시즌의 모든 문법이 압축된 밤이었다.
블루제이스의 빛: 커크의 3점포와 버틴 불펜
분위기를 바꾼 건 알레한드로 커크였다. 4회초, 볼넷과 실책성 출루가 겹친 타이밍에 커크가 중월로 크게 넘기는 한 방을 터뜨렸다. 점수 자체도 중요했지만, 상대 선발의 템포를 완전히 끊어놓은 타구였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이후 블루제이스 불펜은 ‘길게, 그리고 낮게’ 가져가는 운영으로 버텼다. 선발이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내려간 뒤에도 릴리버들이 주자 관리와 강타자 승부를 분리해가며 초장기전의 리듬을 만들었다. 특히 롱릴리프 구간에서의 집중력은 이 경기의 진짜 관전 포인트였다.
이길 수 있었던 경기는 아니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다. 투수진의 형태만 보면 그랬다.
고의사구 4회, 맞았던 결단과 놓친 균형
블루제이스 벤치는 연장에 접어들며 상대 리드오프를 상대로 고의사구 4회라는 과감한 선택을 반복했다. 단기전에서 특정 타자에게 ‘공을 주지 않는’ 철학은 낯설지 않다. 특히 한 타자가 경기 흐름을 좌우할 수 있을 때는 더 그렇다.
다만 고의사구는 항상 양날의 검이다. 주자를 늘려 투수를 더 압박하고, 다음 타자들에게는 자동으로 득점권 기회가 박힌다. 이날 몇 차례 장면에서는 그런 부담이 수비의 움직임을 경직시켰다. 의도는 옳았지만, 그에 맞는 후속 수가 더 날카로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중요한 건 ‘고의사구’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첫 공과 수비 셋업이다. 단 한 구가 이닝의 온도를 바꾸는 것이 포스트시즌의 문법이니까.
라우어의 롱릴리프와 마지막 한 구
가장 인상적인 투구 중 하나는 에릭 라우어였다. 12회 1사부터 올라온 그는 4이닝이 넘는 프레임을 책임지며 거의 완벽에 가까운 내용으로 버텼다. 구위만 보면 끝까지 맡겨도 되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초장기전의 마지막 고비는 늘 첫 타자, 첫 구에서 나온다. 18회, 새로운 투수로 전환한 뒤 상대 중심 타자를 맞는 선택은 결과론 없이도 위험을 안고 간다. 불펜의 체력, 좌우 매치업, 직전 이닝 구속 유지 등을 모두 합친 ‘현장의 체감’을 누구도 100% 외부에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하나 분명한 건 블루제이스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플랜을 마지막 한 구에서 놓쳤다는 사실이다.
데이터로 본 18회 혈투의 포인트
1) 첫 공 스트라이크와 주도권
연장으로 갈수록 첫 공 승부가 커진다. 투수는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야 하고, 타자는 초구를 노려 스윙 강도를 끌어올린다. 이날 연장 후반부에 블루제이스가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한 이닝들은 공통적으로 초구가 존을 살짝 벗어났고, 이후 패스트볼 존 승부가 제한되면서 변화구 비중이 늘었다.
2) 수비 셋업과 단타 차단
기본적으로 다저스의 장타 대응에 집중하면서도, 연장 후반에는 단타 허용 시 주루의 추가 진루까지 막아야 했다. 몇몇 타구에서 좌중간-우중간 라인 커버가 살짝 느리며, 덕아웃이 원했던 ‘한 베이스 세이브’를 놓친 장면이 있었다. 이 차이는 스코어보드엔 찍히지 않지만 투구 선택을 좁힌다.
3) 주자 관리와 번트 배제
최근 MLB 트렌드에서 번트는 최소화되는 편이지만, 극장형 연장에서는 1사 2루를 만들기 위한 전술적 번트가 여전히 유효하다. 블루제이스는 장타 능력을 믿고 정면 돌파를 택했다. 철학의 문제지만, 특정 타석에서는 타구 질보다 상황 점수에 집중했으면 더 깔끔한 한 점을 뽑을 여지가 있었다.
타선 리듬과 주루의 디테일: 한 점의 공방
타선은 초반 흔들림 이후 4회에 폭발했고, 중후반엔 간헐적 기회를 만들었다. 문제는 ‘한 번 더 밀어 넣는’ 디테일이었다. 타구 방향이 오른쪽으로 쏠리면서 상대 수비의 시프트에 걸리는 빈도가 높았고, 느린 땅볼에서 1루 살리기가 지연되며 다음 타석 압박이 약해졌다.
주루는 대체로 공격적이었다. 다만 비디오 판독을 부른 장면처럼 리스크/보상의 계산에서 백 스텝 타이밍이 반 박자 늦었다. 긴 경기일수록 세이프·아웃을 가르는 건 0.1초의 스타트다. 리드폭, 포수 송구 타이밍 분석, 투수의 킥 타임을 묶은 사전 체크가 다음 경기에서 더 중요한 과제가 된다.
다음 선발과 전략 포인트: 비버의 키와 라인업 퍼즐
블루제이스의 다음 선발 카드로 예고된 것은 셰인 비버다. 경기 운영의 핵심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비버의 이닝 이터 역할. 불펜이 18회까지 소모된 직후라 6이닝 이상 투구는 사실상 필수다. 둘째, 라인업의 컨택 밸런스다. 장타보다도 초반 3~4이닝 동안 투구 수를 늘려 상대 선발의 구속 하락 구간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타순 구성에서는 상·하위의 ‘교통 정리’가 필요하다. 득점권에서 콘택트 확률이 높은 타자의 배치, 9번 타순의 세컨드 리드오프화, 좌우 매치업을 통한 후반 대타 카드 보존이 핵심이다. 무엇보다 1점 경기에서 번트·히트앤런을 유연하게 꺼낼 수 있도록 벤치 워크를 열어둬야 한다.
한국 팬 시선에서 본 ‘블루제이스 야구’의 매력
올해 블루제이스는 장면 장면의 밀도가 높은 팀이다. 장타와 콘택트의 교차, 빠른 타구 속도, 포수 리드의 완급이 잘 맞물리면 누구와 붙어도 승산이 있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주는 후반 집중력은 보는 맛을 만든다.
한국 팬 입장에선 KBO에서 익숙한 이름들이 MLB 무대에서 다시 마주치는 재미도 있다. 익숙한 투수의 롱릴리프가 월드시리즈라는 무대에서 팀을 살리는 장면은 ‘야구 보는 맛’을 다시 일깨워준다. 결과가 아쉬웠을 뿐, 과정은 충분히 다음 경기를 기대하게 했다.
정리: 패했지만 남은 길, 그리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
월드시리즈는 7전 4선승제다. 한 경기의 극적인 끝맺음이 전체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블루제이스는 이날 보여준 대응력과 불펜의 깊이를 다음 경기로 그대로 이어가면 된다. 여기에 비버의 이닝 소화와 초반 득점 지원이 더해지면 시리즈 흐름은 다시 균형으로 돌아온다.
패배가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주도권은 한 구에서 오고, 그 한 구를 위해 준비하는 모든 루틴이 승패를 갈라놓는다. 블루제이스는 그 준비가 되어 있는 팀이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팀, 토론토 블루제이스. 마라톤이었지만, 다음 스프린트를 위한 예열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