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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를 멧돼지로 착각”…여수 야산서 발생한 비극, 무엇을 바꿔야 하나

2025년 11월 09일 · 12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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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유해조수 퇴치 중 어둠 속 오인 사격으로 한 생명이 사라졌습니다. 단순한 개인 과실로만 보기엔, 반복되는 유사 사고가 말해주는 바가 큽니다. 현장의 현실과 제도가 만나는 지점을 차분히 정리했습니다.

1) 사건 개요: 어둠 속 한 발, 되돌릴 수 없던 선택

전남 여수의 한 야산에서 유해조수(멧돼지) 퇴치 활동 중이던 두 엽사 사이에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밤 11시대,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동료를 멧돼지로 오인해 발포했고, 복부 관통상을 입은 엽사는 병원 이송 후 끝내 숨졌습니다. 가해자는 수렵면허를 소지한 합법적 활동 중이었다고 진술했으며,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위를 조사 중입니다.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최근 수년간 유해조수 구제 현장에서 발생한 ‘오인·오발’ 건수가 이어지고 있고, 특히 야간에 사고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즉, 개인 실수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현장 구조와 제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핵심 포인트

  • 합법적 유해조수 퇴치 중 발생
  • 야간, 제한 시야, 동료 분산 배치 등 위험 요인이 결합
  • 업무상 과실 판단과 별개로, 재발 방지책이 시급

2) 왜 ‘오인 사격’이 반복될까: 구조적 원인 들여다보기

어둠과 지형: 판단력을 갉아먹는 환경

야산 지형은 수풀과 경사, 굴곡으로 시야를 조각냅니다. 밤이 되면 음영과 소리만이 단서가 됩니다. 특히 멧돼지는 움직임이 무겁고 낮게 깔리기 때문에, 낮은 실루엣을 띠는 사람의 움직임도 비슷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어두운 숲에서는 ‘형체 인식’보다 ‘움직임 반응’이 먼저 작동하기 쉽고, 이때 방아쇠 손가락은 사고와 맞닿게 됩니다.

팀 전개 방식의 허점

현장에서는 보통 2~4인 단위로 넓게 흩어져 수색합니다. 문제는 위치 공유가 간헐적이거나 음성 의존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무전이 있어도 송수신 지연, 잡음, 산악 음영으로 ‘동시에 서로의 위치를 확정’하지 못하는 순간이 발생합니다. 그 사이에 ‘확인되지 않은 움직임’이 목표물로 전제되고, 사격 판단이 빨라집니다.

장비 격차와 비용

열화상/야간투시 장비, 고휘도 식별 라이트, 반사 표지, 팀 위치 비콘 등은 사고 확률을 유의미하게 낮춥니다. 그러나 많은 현장에서 장비는 개인 부담이거나 최소한에 그칩니다. 즉, 안전이 ‘선택’이 되면 사고는 ‘확률’이 됩니다.

인지적 편향: ‘목표 상정’이 만드는 터널 시야

멧돼지 출현이 잦거나 방금 흔적을 발견한 직후에는 목표 집착이 강화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인 편향이 작동하면서, 관찰된 움직임을 ‘멧돼지일 것’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이때 ‘사람일 가능성’은 배경으로 밀려나며, 절차적 확인(식별–보고–승인–사격)의 일부가 생략됩니다.

3) 현장 안전의 기본 원칙 7: 작은 습관이 큰 사고를 막는다

총기 안전은 상식 같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반복과 체화가 핵심입니다. 아래 일곱 가지는 유해조수 퇴치 현장에서 특히 유효합니다.

  • 확실한 식별 전 사격 금지: ‘눈으로 형체 확인–열원 확인–팀 확인’ 3단계가 모두 충족될 때만 방아쇠에 손을 올립니다.
  • 야간 분산 금지 범위 설정: 팀 간 최소 간격/최대 이격 거리를 사전에 정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즉시 재집결합니다.
  • 발화선 선언: 사각지대가 생기는 각도에서는 ‘내 발화선은 북서–북동 30도’처럼 구두 선언 후 이동합니다.
  • 식별 장치 의무화: 헬멧/모자/상체에 고휘도 반사띠, 깜박이 비콘, IR 패치 등 2가지 이상 복수 식별 수단을 사용합니다.
  • 방아쇠 손가락 규율: 조준 전까지 방아쇠 밖에 손가락 두기. 이동 중에는 반드시 슬링 세이프(총구 하향/비사람 방향) 유지.
  • 무전 프로토콜: 5~10분 주기 위치 보고, 사격 전 ‘콜사인–방향–거리–발사’ 3초 규칙을 적용합니다.
  • 야간 중지 기준: 안개·비 등 가시성 악화 시 ‘가시 범위 30m 이하’면 즉시 철수 또는 열 감지 장비 전환 후 재개합니다.

작은 체크리스트라도 현장에 프린트해 포켓에 넣어두면, 긴장된 순간에 절차 회복에 큰 도움이 됩니다.

4) 야간 수렵 장비, 무엇이 실효적인가

열화상(thermal) vs. 야간투시(NV)

열화상은 온도 차로 형체를 드러내 멧돼지와 사람 구분에 강점이 있습니다. 반면 야간투시는 잔광 증폭 방식으로 윤곽 파악은 쉽지만, 두꺼운 수풀이나 배경 노이즈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두 장비를 병행하면 ‘열원 확인–윤곽 확인’ 순서가 가능해 식별 정확도가 올라갑니다.

라이트와 레드닷, 그리고 반사 패치

고출력 화이트 라이트는 순간 시야 확보에 유리하지만, 반사광으로 위치가 노출되고 동물 행동이 급격히 변할 수 있습니다. 팀 운용이라면 사격수를 제외한 관측수가 라이트를 운영하고, 사격수는 레드닷/홀로그램 조준기로 최소한의 조준 시간을 확보하는 조합이 안전합니다. 모든 팀원에게 반사 패치를 ‘전면·후면’ 이중 부착하는 것도 필수에 가깝습니다.

위치 공유 장치

저전력 비콘이나 GPS 기반 위치 공유 앱은 산악 음영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무전과 병행하면 사고 확률을 낮춥니다. 실시간 아이콘이 아니라도 30초~1분 간격 핑만 있어도 ‘사람일 가능성’을 상시 상기시킵니다.

장비는 “쏘기 쉽게”가 아니라 “쏘지 않게” 돕는 쪽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5) 제도·운영 개선 체크리스트: 현장 의견을 반영하자

유해조수 퇴치는 주민 안전과 생태 관리라는 공익 목적을 띱니다. 그렇다면 안전 장비와 교육도 공공의 영역에서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합니다. 현실적인 보완안을 정리했습니다.

  • 지자체 지원 장비 표준화: 열화상 1대/팀, 반사 장구류, 위치 비콘, 팀 무전기 세트를 기본 보급
  • 야간 활동 허가제 강화: 야간에는 필수 장비 체크리스트 통과 시에만 출고·배치
  • 브리핑–디브리핑 의무: 출동 전 5분 브리핑(역할, 발화선, 철수 신호), 종료 후 5분 디브리핑(사고·아차사고 기록)
  • 사격 절차 표준문안: ‘식별–보고–대기–승인–사격’ 순서를 간단 문안으로 무전에 고정
  • 훈련 주기: 분기별 저강도 야간 훈련(코너링, 식별, 사격 중지 훈련)과 연 1회 합동 모의훈련
  • 사고 데이터 공개: 오인 사격, 아차사고 통계를 익명 공개해 학습 자원으로 활용

사고는 규정의 부재보다, ‘있지만 작동하지 않는 규정’에서 더 자주 발생합니다. 현장 친화적 문서와 반복 훈련이 핵심입니다.

6) 사고 이후 무엇을 해야 하나: 기록, 보고, 심리 회복

즉시 조치

  • 현장 보존: 총기·탄피·사격 위치·피격 위치를 사진·영상으로 남기고, 불필요한 이동을 멈춥니다.
  • 의료·신고 병행: 119·112 동시 신고, GPS 좌표 또는 가장 가까운 지형지물 기준으로 위치 안내
  • 팀 분리: 관련자 진술 오염을 막기 위해 팀원 간 상호 대화 최소화

사후 관리

사건 직후 당사자와 목격자는 강한 죄책감과 플래시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상담 연계, 일정 기간 총기 활동 중단, 복귀 전 심리 평가를 권합니다. 유가족과 팀 모두가 회복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같은 언어로 공유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7) 지역사회가 할 일: 안전을 ‘습관’으로 만드는 방법

주민 신고와 순찰 정보, 농가 피해 데이터는 퇴치 동선 설계에 결정적입니다. 마을 단위로 ‘야간 출몰 지도’를 업데이트하고, 학교·등산로·산책로 인접 구역에는 야간 활동을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또한 농가에도 반사표지, 태양광 깜박이 경광 등을 보급하면 엽사·주민 모두의 안전 지대가 넓어집니다.

무엇보다 ‘사고를 숨기지 않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아차사고 제보를 칭찬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같은 유형의 사고가 줄어듭니다.

8) 정리: 다시는 같은 비극이 없도록

이번 여수 야산의 비극은 누구 한 사람의 실수로만 끝낼 문제가 아닙니다. 야간, 제한 시야, 팀 전개, 장비 격차, 절차 준수—여러 조각이 겹치며 사고의 확률을 키웠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바꾸면, 확률은 반대로 줄어듭니다.

공익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입니다. 확인에 확인을 더하는 습관, 팀이 서로를 지켜보는 절차, 최소한의 장비와 교육. 이 세 가지만 제대로 작동해도 ‘오인 사격’이라는 말 자체가 뉴스에서 사라지는 날이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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