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한중 정상회담 ‘비핵화 의제’에 선제 압박… “개꿈” 발언의 의도와 파장
한중 정상회담 의제에 ‘한반도 비핵화’가 거론되자, 북한이 “결단코 실현 불가능한 개꿈”이라며 공개 반발했다. 수위는 낮췄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중국을 겨냥한 간접 압박, 그리고 한반도 안보지형에 미칠 여파를 짚어본다.
1. 무엇이 쟁점인가: ‘비핵화’가 다시 불 지핀 말의 전선
한중 정상회담 의제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실현’이 포함될 수 있다는 한국 측 설명이 나온 직후, 북한은 외무성 부상 담화를 통해 강하게 반발했다. “백번, 천번, 만번 비핵화 타령”이라는 표현과 함께 “개꿈”이라는 직설적 언어를 반복하며 논의 자체를 부정했다. 핵심은 단순한 불만 표출이 아니라, 회담 개시 직전의 선제적 메시지 관리다.
북한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불가역적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해왔다. 그 관점에서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 올릴 의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언설이다. 따라서 한국이 중국과의 회담에서 이를 의제로 다룬다는 신호가 포착되면, 북한은 곧바로 프레이밍 전쟁을 개시한다. 이번에도 시간차 없이 반응을 낸 이유다.
2. 북한 담화의 핵심 문구 해설: 수사, 대상, 숨은 청중
2-1. “개꿈”이라는 표현의 기능
“개꿈”은 외교적 언어로는 거칠지만, 대내 결속과 대외 압박을 동시에 노린 메시지다. 내부적으로는 핵보유 기조를 ‘상식’으로 고정하고, 외부에는 ‘이 의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는 금지선을 분명히 그린다. 동시에 회담 파트너(중국)에게도 다층적 신호를 보낸다.
2-2. “인내성 있게 보여주겠다”는 경고의 뉘앙스
표현 자체는 완곡하지만, 실무적으로는 군사적 시위(전술유도무기 발사, SLBM 관련 활동, 전술핵 운용 훈련 공표 등)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각적 도발 대신 단계적 수위를 올릴 수 있음을 내비친 문장이다.
2-3. 대상은 한국, 숨은 청중은 중국
표면상 비판의 화살은 한국을 겨냥하지만, 회담 직전이라는 타이밍은 중국을 향한 간접 압박으로 읽힌다. 북·중 관계가 개선 국면에 있다는 평가 속에서도, 북한은 중국이 ‘비핵화’ 언급을 용인할 소지를 예민하게 감시한다.
3. 왜 지금인가: 회담 직전 메시지 선점의 전술
정상회담은 의제와 문구의 싸움이다. 회담 개시 직전에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 회담장 밖의 여론은 이미 특정 방향으로 기울기 쉽다. 이런 언어적 선제권은 합의문 문구와 브리핑 톤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북한은 이번에도 ‘회담 전-중-후’로 분절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가동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지역 정세의 가속화다. 미·중 경쟁의 요동, 한·미·일 협력의 심화, 러시아와의 긴밀화 등은 북한에게 전략적 창을 넓혀준다. 회담 타이밍은 이런 외생 변수들을 동원해 의제 균형을 흔들기에 적절하다.
4. 중국 변수: 북·중·한 삼각에서의 얇은 균형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한다. 직접적인 ‘비핵화’ 언급은 상황에 따라 톤이 달라지지만, 최근 북·중 관계 복원 흐름을 고려하면 중국은 표현을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이번 담화는 바로 이 지점을 선제 압박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중 협력의 공간을 열어두면서도 북·중 관계를 흔들지 않는 문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비핵화’ 대신 ‘평화·안정·대화’로 우회하거나, 비확산(NPT 준수) 원칙을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출 공산이 크다. 북한으로서는 이런 모호한 문구조차 자신들의 핵 보유를 간접 부정하는 장치로 해석할 여지가 있으니, 선제 대응을 선택한 셈이다.
5. 수위 조절의 배경: 왜 ‘부상’ 담화였나
담화 주체가 최고위 직책이 아닌 외무성 부상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김여정이나 최상층이 아닌 점은, 중국의 체면을 일정 부분 고려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메시지는 강하지만, 결례의 수준은 낮춰 놓은 형태다. 다시 말해, 전면 충돌이 아니라 ‘경고의 표지판’을 세운 정도다.
이런 수위 조절은 향후 국면 전환 여지를 남긴다. 회담 결과가 북한의 허용선 안에 머문다면 추가 고조를 늦출 수 있고, 반대로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면 군사시위로 수위를 높일 명분도 확보한다. 즉, 담화 자체가 이후의 단계적 대응을 설계한 일종의 ‘포석’이다.
6. 단기 파장: 회담 문구와 사후 브리핑에 쏠리는 시선
단기적으로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회담 결과 문구다. ‘비핵화’가 명시되는지, ‘평화·안정·대화’ 중심인지, 또는 비확산 원칙이 언급되는지에 따라 북한의 반응 강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회담 직후 양국 브리핑의 톤 차이도 중요하다. 같은 합의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북한이 취하는 해석은 크게 달라진다.
군사적으로는 즉각적인 고강도 도발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대신 정찰위성 활동,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발사, 포병 훈련 공표 등 단계적 과시가 예상된다. 이는 대외 메시지를 유지하면서도 대내 결속을 관리하는 데 적합한 방식이다.
7. 중기 시나리오: 군사시위, 외교전, 정보전의 삼중주
7-1. 군사시위
정찰위성 추가 발사, 고체연료 기반 탄도미사일 시험, 잠수함발사체계 관련 활동 공개 등은 반복 가능한 메뉴다. ‘인내성 있게 보여주겠다’는 문구는 이런 단계적 압박을 예고한다.
7-2. 외교전
북·중 고위급 교류의 빈도와 형식이 관건이다. 공개형 사진과 의전 메시지의 빈도를 높이면, 중국의 묵시적 지지라는 신호를 내보낼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이 표현을 절제하면, 북한은 자력적 군사시위를 강화하는 쪽으로 균형을 맞출 것이다.
7-3. 정보·심리전
국영 매체를 통한 연속 담화, ‘핵무력 법제화’의 재확인, 미국과 한국을 겨냥한 수사적 고삐 죄기가 이어질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핵 억제의 필연성’을 반복 강조하고, 대외적으로는 ‘비핵화 프레임’ 자체를 거부하는 내러티브를 공고화한다.
8. 한국의 선택지: ‘비핵화’ 메시지의 실제 운용법
한국이 비핵화를 언급하는 목적은 명확하다. 국제 규범과 동맹 공조의 원칙을 확인하고, 협력국(중국 포함)과의 공통분모를 넓히기 위해서다. 다만 메시지의 조합은 섬세해야 한다. 비핵화 목표는 분명히 하되, 현실적 관리 장치(위기관리 통신, 우발 충돌 방지, 인도적 협력 등)의 병행을 시사하는 게 효과적이다.
동시에 억제력의 신뢰성을 높이는 실무 조치—정보감시정찰(ISR) 협력, 미사일 방어태세, 연합훈련의 질적 고도화—를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 메시지는 원칙을, 조치는 실효성을 담보한다. 이 두 축이 맞물릴 때, 북한의 언어적 공세는 실질적 영향을 줄이기 어렵다.
9. 용어 바로보기: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의 차이
‘한반도 비핵화’는 역사적 맥락에서 남북을 포괄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쓰여 왔다. 북한은 이를 자주 ‘주권 침해’ 혹은 ‘핵보유 부정’으로 해석한다. 반면 ‘북핵 문제’는 보다 특정적이고 현안 중심의 표현이다. 국제 담론에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같은 용어가 등장했지만, 북한은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 왔다.
결국 용어 선택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정책의 신호다. 회담문구에서 어떤 표현이 선택되느냐에 따라, 북한의 반응과 후속 행동이 갈라질 수 있다. 이번 국면에서 각국이 택할 단어는 예민한 계기판과 같다.
10. 정리: 말의 전선, 메시지의 전술
이번 담화는 북한이 회담 전장 바깥에서 여론의 고도까지 통제하려는 시도다. ‘개꿈’이라는 직설은 내부 결속을 다지면서, 중국을 향해 ‘비핵화’ 언급을 자제하라는 간접 신호를 보낸다. 담화 주체의 급을 조절해 외교적 공간도 남겼다.
단기적으로는 회담 결과 문구와 브리핑의 톤이 중요하고, 중기적으로는 군사시위와 외교전의 조합이 변수다. 한국은 원칙적 메시지를 유지하되, 억제력과 관리장치를 병행해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결국 이 싸움은 말로 시작해도, 신뢰성과 체계로 귀결된다. 언어는 방향을 제시하고, 체계는 그 방향을 현실로 만든다.
한 줄 정리: 북한의 “개꿈” 발언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계산된 전술이다. 회담장 밖의 문구 전쟁에서 선제권을 잡기 위한, 익숙하지만 유효한 방법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화의 간극은 종종 단어에서 시작됩니다. 이번엔 그 단어가 ‘비핵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