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치킨에서 시작된 AI 동맹” 젠슨 황·이재용·정의선의 한밤 치맥, 무엇을 남겼나
서울 삼성동의 한 치킨집에서 시작된 70여 분. 치즈스틱과 생맥주, 그리고 ‘DGX 스파크’ 사인 선물까지. 1996년 이건희의 편지를 소환한 젠슨 황은 무대 위에서 한국과의 다음 행보를 암시했다. 단순한 만남이 아닌, 기술·공급망·모빌리티까지 잇는 전략 신호를 짚어본다.
치맥 한 상, 왜 화제가 됐나
엔비디아의 젠슨 황, 삼성전자 이재용, 현대차그룹 정의선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장소는 의외의 ‘깐부치킨’. 자연스러운 일상 공간에서 이뤄진 회동이지만, 상징성은 가볍지 않다. AI 반도체를 주도하는 엔비디아, HBM과 패키징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삼성,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과 자율주행·로보틱스를 밀어붙이는 현대차까지, 서로의 퍼즐이 맞물리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함께하자.” 업계는 이 만남을 ‘전방위 협력의 신호탄’으로 읽었다. 현장에서 오간 농담과 러브샷, 시민들과의 소통은 분명 가벼운 장면이지만, 그 뒤에는 공급망과 기술 로드맵을 두고 더욱 진지한 계산이 자리한다.
1996년의 편지: 엔비디아와 한국의 첫 고리
“1996년 JY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편지 덕분에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무대 위에서 젠슨 황이 꺼낸 ‘편지’는 이야기를 과거로 당겼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 애플리케이션 생태계, 그리고 비디오게임 올림픽에 가까운 비전. 90년대 말 한국의 네트워크 인프라 확대와 PC방 문화, e스포츠 태동은 이후 지포스의 성장과 맞물렸다. 이재용이 언급한 초창기 ‘지포스 256과 삼성 GDDR’ 협력은 그 연결의 실마리다.
이 일화가 현재에 던지는 신호는 간단하다. 빠른 의사결정과 대담한 인프라 투자는 오늘의 AI 인프라 경쟁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90년대의 ‘네트워크와 그래픽’이 오늘의 ‘HBM과 가속기’로 치환됐을 뿐이다.
깐부치킨 현장 스케치: 메뉴부터 사인 선물까지
메뉴 선택과 현장 분위기
테이블에는 크리스피 순살, 스윗 순살, 바삭한 식스팩에 생맥주가 올랐다. 치즈스틱과 치즈볼은 작은 디테일을 더했다. 젠슨 황이 직접 치즈스틱을 들고 밖에 선 팬들에게 나눠주었다는 장면은, 기술 리더의 친근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옆 테이블에서 건넨 소맥을 맛보며 “맥주보다 소맥이 더 맛있다”는 농담까지, 분위기는 유쾌했다.
DGX 스파크와 위스키 사인
회동의 ‘기념품’도 눈길을 끌었다. 젠슨 황은 최신 개인용 AI 슈퍼컴퓨터 콘셉트인 ‘DGX 스파크’에 사인을 담아 전달했고, 하쿠슈 25년 위스키를 선물했다. 이벤트성처럼 보이지만, 실은 메시지가 명확하다. ‘개인에게 닿는 AI 컴퓨팅’과 ‘프리미엄에 걸맞은 파트너십’이다.
러브샷과 포스터 낙서
세 사람은 러브샷을 하고, “Amazing Chimek”이라는 사인과 “대박 나세요”, “최고입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한국적 정서와 글로벌 테크 리더십이 한 장면에 포개진 순간이었다.
무대 위의 메시지: ‘로보틱스’와 한국
치맥 이후 세 사람은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젠슨 황은 “좋은 소식이 있지만 먼저 말할 순 없다”며 ‘로보틱스’를 힌트로 던졌다. 100% 한국과 연관될 것이라는 단서는 의미심장하다. 국내 제조 강점, 로봇 플랫폼 수요, 그리고 차량용 컴퓨팅과 물류 로보틱스의 교차점이 떠오른다.
현대차가 추진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과 로보틱스 역량(제조·물류·휴머노이드 연구 등), 삼성의 메모리·패키징·파운드리 포지션, 엔비디아의 CUDA·Isaac·Orin·Thor 생태계가 만날 지점은 많다.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생태계를 묶는 API·레퍼런스·디자인 키트 공유 같은 ‘작동하는 약속’이 뒤따라야 한다.
핵심 포인트 5가지: 협력의 좌표
- HBM·패키징: 차세대 메모리 수율과 발열 관리, COWOS/플립칩 대안 및 선단 패키징 라인 증설 이슈.
- 오토모티브: 엔비디아 Thor/Drive 스택과 현대차의 자율주행·인포테인먼트 통합, 차량 내 미들웨어·OTA 보안.
- 로보틱스: Isaac Sim/ROS 2 연계와 한국 제조현장의 시뮬레이션-현장 폐루프. 스마트팩토리 표준화 가능성.
- 에코시스템: 국내 CSP/통신사/콘텐츠사와 AI 팜–엣지–PC까지 이어지는 하이브리드 배포 모델.
- 인재·개발툴: 대학·연구소·산업 현장에 최적화된 CUDA/Omniverse 커리큘럼, 개발 키트의 접근성 개선.
요약하면, ‘칩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스택과 레퍼런스 설계, 그리고 현장에 맞는 통합 배포까지 포괄하는 그림이다.
산업별 파급효과: 반도체·모빌리티·스마트팩토리
반도체: HBM 시대의 현실 과제
AI 학습 수요 폭증으로 HBM 가격·공급은 민감한 변수다. 삼성은 HBM3E와 차세대 HBM4에 집중하고, 패키징 경쟁력과 고객 맞춤 인증에서 속도를 내야 한다. 수율·발열·전력 최적화는 단순한 스펙 경쟁이 아니라 대규모 클러스터 TCO에 직결된다. 엔비디아가 원하는 것은 ‘일정·성능·안정성’ 3박자의 예측 가능성이다.
모빌리티: SDV로의 가속
현대차는 차량을 ‘업데이트 가능한 컴퓨팅 플랫폼’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SoC와 소프트웨어 스택을 활용하면, 고도화된 운전자 보조, 인포테인먼트, 3D UI, 게임 스트리밍까지 연결된다. 관건은 전장 SW 품질 체계와 OTA 보안, 그리고 지도·센서 퓨전 데이터의 현지 최적화다.
스마트팩토리와 로보틱스
국내 제조 현장에 시뮬레이션 기반 설계(디지털 트윈)를 확산하면, 생산성 개선과 설비 자동화 검증이 빨라진다. Isaac·Omniverse 같은 툴체인이 보급되려면 교육·테스트베드·레퍼런스 공장이 필요하다. 여기서 대기업-중견·중소 협력 모델이 중요해진다.
한국 게이밍·e스포츠 생태계의 숨은 공신론
젠슨 황은 한국의 PC방 문화와 e스포츠 인기에 감사함을 표했다. 사실 한국의 게임 문화는 GPU의 성능 경쟁을 일상에 노출시키며,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를 자연스러운 소비 행태로 만들었다. 스트리밍, 크리에이터 생태계, PC방의 대규모 동시접속 환경은 엔비디아가 실사용자 관점의 피드백을 빠르게 받는 통로이기도 했다.
지포스 25주년을 기념한 이번 무대에 이재용과 정의선이 동행한 장면은, 게임이 단지 ‘여가’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의 씨앗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래픽은 이제 생성형 AI의 인터페이스이자, XR·디지털 트윈·로보틱스의 시각화 기반이다.
리스크와 변수: 관세, 공급망, 기술 로드맵
글로벌 관세 협상과 규제 환경은 여전히 변동성이 크다. 자동차 관세 인하가 모빌리티 협력에 긍정적 여지를 주는 한편, 반도체 관세·수출 규제의 미세 조정은 공급 시점과 원가 구조에 영향을 준다. HBM·첨단 패키징 장비 조달, 전력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입지, 냉각 기술(액침·수냉) 도입 속도도 중요한 변수다.
기술 로드맵 측면에서는 차세대 아키텍처의 출시 템포와 소프트웨어 호환성, 레거시와의 공존 전략이 필요하다. 개발자 생태계가 느끼는 것은 ‘최신 스택의 혜택을 얼마나 빨리,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는가’다. 대규모 전환기에 문서화·샘플·레퍼런스 프로젝트가 경쟁력이 된다.
앞으로 12개월 체크리스트
- 신규 AI 반도체 공급 계약의 구체화: 물량·패키징 스펙·납기.
- HBM4 전환 로드맵과 패키징 용량 증설 계획의 가시화.
- 현대차 SDV 파이프라인과 엔비디아 스택의 통합 일정.
- 로보틱스 공동 프로젝트의 테스트베드 공개—물류/제조 파일럿.
- 국내 CSP·데이터센터 사업자의 AI 팜 구축과 전력/냉각 투자.
- 대학·연구조직 대상 개발 키트/교육 프로그램 확대.
- 국내 게임·크리에이터 생태계와의 실사용자 파일럿 확대.
포인트: ‘선언’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작동하는 계약’과 ‘개발자 손에 쥐어지는 도구’다.
정리: 치킨에서 시작해 팹과 도로 위로
치맥 회동은 이벤트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도체 공급망, 차량 컴퓨팅, 로보틱스의 플랜을 대중 앞에서 가볍게 예고한 자리였다. 1996년의 편지가 거대한 변화를 움직였듯, 오늘의 한 잔이 내일의 대규모 투자와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안정적으로, 얼마나 개방적으로?” 한국은 한 번 ‘속도전’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답은 깐부치킨의 테이블이 아니라, 팹의 수율과 도로 위의 업데이트에서 확인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