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상사’ 강태풍, 해외로 길을 열다: 안전화 수출의 반전과 집념의 항해
IMF의 거센 역풍 속에서도 ‘안 되는 게 어딨냐’는 마음 하나로 바다 밖을 바라본 사람들. 영상으로 문을 두드리고, 데이터로 설득하고, 결국 다른 배로 길을 바꾼 그들의 항해를 따라가 봅니다.
IMF의 그늘,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다
국내 수요가 얼어붙던 시기, 태풍상사 내부에 내려진 미션은 간단하지만 냉혹했습니다. 안전화 7천 켤레를 소화하지 못하면 버티기 어렵다는 현실. 여기에 강태풍은 국내에서의 소진만으로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가 본 길은 ‘수출’이었고, 방향은 명확했습니다. 안전 기준과 노동 안전 문화가 이미 뿌리내린 지역, 즉 북미와 유럽의 바이어를 정면으로 겨냥하는 일이었죠.
이 지점에서 중요한 건 제품의 본질을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었습니다. ‘튼튼하다’는 주장 대신, 실제 사용자 환경과 국제 인증 프레임을 맞물려 설명하는 방식. 그게 첫 단추였습니다.
7천 켤레의 과제와 시장 재정의
숫자는 목적지와 동력 모두가 됩니다. 7천 켤레는 부채 상환과 운영자금의 임계치였고, 동시에 제품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최소 규모이기도 했죠. 강태풍은 내수에서의 소모전을 멈추고, ‘가장 안전을 중시하는 일터에서 일어나는 순간’이라는 사용 시나리오 중심으로 시장을 재정의합니다.
그는 바이어가 궁금해할 질문을 거꾸로 적어 내려갔다고 합니다. “미끄럼 계수는?”, “유리 파편 위에서의 파손 위험은?”, “연속 사용 6개월 후의 밑창 변형은?” 같은 구체적 질문들. 답을 갖고 있되, 보여줄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비디오 영업’이라는 발상 전환
강태풍이 꺼낸 카드는 영상이었습니다. 당시엔 낯설었을지라도, 현장을 그대로 담아내는 방식만큼 설득력 있는 자료는 없다는 판단이었죠. 그는 안전화를 신고 유리 파편 위를 걷고, 점프해 충격을 주며, 방수·내구 테스트를 한 프레임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바이어에게 갯수보다 ‘재현 가능한 증거’를 제공한 셈입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종이 브로슈어 대신, ‘사용 장면’으로 구매를 결정할 거예요.” — 전략의 요지는 단순했습니다. 증거가 곧 스토리라는 것.
이 영상은 미팅의 문을 여는 초대장이 되었고, 실무 협의로 이어질 발판을 만들었습니다. 마케팅은 결국 신뢰의 전이이며, 신뢰는 체험에서 출발한다는 기본기가 작동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미선의 PT, 숫자와 스토리의 균형
문을 열었다면 들어가야 합니다. 오미선은 밤을 설계서로 바꿔가며 프레젠테이션을 다듬습니다. 핵심은 세 가지였죠.
- 성능 데이터: 마모 시험, 미끄럼 저항, 충격 흡수 등 정량 수치
- 사용자 스토리: 실제 현장의 동선과 사고 빈도, 안전관리자의 체감 포인트
- 공급 신뢰: 납기 대응 플랜, QC 체크리스트, 불량 대응 SLA
숫자만으론 지루하고, 스토리만으론 가볍습니다. 두 축이 맞물릴 때, 바이어는 ‘검증된 서사’를 보게 됩니다. 팀은 그렇게 계약을 받아냈습니다. 집념으로 얻은 결과였지만, 외부 변수가 남아 있었습니다.
선적 취소, 해운사 블랙리스트라는 벽
출항을 이틀 앞둔 시점, 해운사의 선적 거부 통보가 들어옵니다. 사유는 블랙리스트 등재. 표면적 이유가 어떻든, 실질적으로는 경쟁사의 외압이 작동한 정황이었습니다. 계약서만으론 물건이 건너가지 못하고, 물류가 끊기면 매출은 종이 위에만 남습니다.
갈등은 관계로 번집니다. 강태풍이 무리한 자금 조달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팀은 잠시 흔들립니다. 그러나 위기는 서로의 역할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외부 돌파구를, 누군가는 내부 리스크 관리를 맡아야 했죠.
우회 항로: 원양어선 아이디어의 현실성
부산의 수산 시장에서 들은 한마디가 실마리가 됩니다. “이 생선, 태평양 건너왔어.” 바닷길은 화물선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원양어선 루트를 활용한다면 어떨까. 당연히 넘어야 할 산이 있었습니다.
위생과 안전
식품 운반 선박을 산업 제품 운송에 투입할 때는 오염 이슈가 발생합니다. 포장을 이중화하고, 팔레트·완충재를 별도 관리하며, 선적 전후 세척 프로토콜을 문서화해야 합니다.
보험과 책임
정규 해운사가 아닌 루트를 쓰면 보험사가 요구하는 담보가 달라집니다. 적하보험 약관 추가특약, 하역 시 파손 책임 범위 조정 같은 실무 협의가 필요합니다.
통관과 서류
입항지에서의 통관 절차를 선행 검토해야 합니다. HS 코드, 소재 인증, 안전 인증서 부착, 원산지 증명, 라벨 표기 언어까지 체크리스트로 묶어야 하죠.
이 모든 걸 조건부로라도 정리할 수 있다면, 바다는 또 하나의 도로가 됩니다. 결국 핵심은 ‘가능성’을 ‘절차’로 바꾸는 일입니다.
팀워크의 온도: 갈등 이후 더 단단해지다
감정의 골이 파이면, 팀은 두 갈래로 갈라지기 쉽습니다. 이때 태풍상사 팀은 문제를 ‘사람’에서 ‘프로세스’로 옮깁니다. 자금 의사결정 라인을 다층화하고,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한 채널로 묶었습니다. 오미선은 언어와 데이터의 허브가 되었고, 강태풍은 외부 네트워크를 전담했습니다.
갈등은 결과가 아님을 증명한 셈입니다. 갈등은 간판을 바꿔 단 다음 단계의 시작입니다.
리스크를 다루는 법: 교훈 다섯 가지
- 증거는 움직인다: 카탈로그보다 현장 영상을 우선. 체험의 재현이 신뢰를 만든다.
- 데이터와 서사의 이중 엔진: 수치가 논리를, 스토리가 결정을 완성한다.
- 물류는 제품의 일부: 포장, 보험, 통관은 기능과 가격만큼 중요하다.
- 우회는 전략: 메인 항로가 막히면 보조 항로를 시뮬레이션해 둔다.
- 팀의 역할 분리: 갈등이 생기면 책임을 명확히 하고, 의사결정 속도를 높인다.
이 다섯 가지는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 아니라, 실제 수출 현장에서 통하는 기본이기도 합니다.
다음 장면을 예감하게 하는 징후들
계약 이후의 세계는 납기, CSR, 애프터서비스로 이어집니다. 특히 안전화는 사용 중 피드백 루프가 빠른 제품군입니다. 교체 주기, 현장 맞춤형 인솔, 계절성 이슈 같은 요소가 추가 수요를 만듭니다. 팀은 이미 ‘다음 오더’를 위한 데이터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 바이어 포트폴리오의 분산이 필요합니다. 특정 해운 루트에 종속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목적지 항구와 환적지의 조합을 다양화하는 전략이 검토됩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파트너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정리: 위기에서 항해로
태풍상사의 해외 진출 서사는, 사실 거창한 성공담이라기보다 ‘절차를 만들어가는 과정기’에 가깝습니다. 목표를 쪼개고, 증거를 축적하고, 막히면 돌아가고, 팀을 지키는 일. 이 네 가지가 반복되며 길이 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 결과만 바라봅니다. 하지만 결과는 과정의 부산물입니다. IMF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한 팀은 안전화라는 작고 단단한 제품으로 멀리 나갈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바다는 넓고, 항로는 하나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속도와, 끝까지 붙잡을 기준 하나입니다.
덧붙임: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체크리스트
- 영상 샷 리스트: 기능 3, 내구 2, 사용 환경 2, 인증 언급 1
- PT 구성: 문제-증거-해결-공급-사후관리 5단
- 물류 플랜 B: 선사 2곳, 환적지 1곳, 우회 루트 1곳 문서화
- 자금 가드레일: 한도·담보·승인 라인 사전 합의
- 커뮤니케이션: 대외 단일 창 salesteam@ 표준 대신, 내부 단일 창구 지정 및 로그 기록
이야기의 결은 드라마지만, 방법론은 현실입니다. 오늘도 한 칸씩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