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보노’가 흔든 친족상도례, 드라마를 넘어 현실 논쟁으로
시청률 고공행진 속, 극 중 ‘친족상도례’가 본격 조명되며 제도적 논쟁이 수면 위로 올랐다. 드라마가 던진 질문을 따라, 친족상도례의 의미와 쟁점, 실제 제도 변화 흐름까지 차근히 정리했다.
드라마 ‘프로보노’가 건드린 지점
최근 방영된 tvN 토일드라마 ‘프로보노’에서는 공익변호사 팀이 가족 간 재산범죄를 둘러싼 제도적 벽과 맞서는 서사가 펼쳐졌다. 시청률은 두 자릿수에 근접하며 자체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족이라면 어디까지 봐줘야 하나”라는 질문이 빠르게 확산됐다.
극의 핵심은 연예 산업 내부에서 시작된 신뢰 파탄이었다. 모녀 사이에 얽힌 정산 문제, 회사 자금의 사적 사용 의혹, 그리고 마지막엔 ‘친족상도례’가 방패처럼 등장한다. 드라마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법정 밖’으로 나아가 국정감사장이라는 공론의 장을 무대로 선택했다. 이야기의 장치가 과장되지는 않았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고 있는가.”
친족상도례, 정확히 무엇인가
근본 취지
친족상도례는 가족 구성원 간에 발생한 재산범죄의 형사처벌을 일정 부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하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과거에는 가족 공동체의 평온, 생계의 연속성, 화해 가능성 등을 존중하는 관점에서 만들어졌다.
적용 범위의 뼈대
핵심은 ‘가까운 친족 사이의 재산범죄’라는 점이다. 일률적으로 모두 면제되는 것은 아니고, 범죄 유형과 친족의 범위, 고소의 유무 등 세부 요건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쉽게 말해 “가족 간 다툼은 집안에서 풀라”는 오래된 법 감수성의 흔적이 제도에 남아 있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왜 논란이 커졌나: 보호 vs 악용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명백한 재산 침해가 형사처벌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당한가. 제도는 화해를 돕는 장치로 의도됐지만, 현실에서는 가해자가 보호막으로 악용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보고된다.
- 피해자 입장: “가족이라 더 아프다.” 피해 회복은커녕 문제 제기 자체가 ‘패륜’ 낙인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 가해자 입장: 형사 리스크가 낮다는 계산이 작동하면, 금전 유용을 ‘관행’처럼 여기게 될 수 있다.
- 사회적 비용: 분쟁이 은폐되면서 재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같은 유형의 피해가 구조적으로 누적된다.
이렇듯 ‘화합’이라는 미덕이 실제론 ‘침묵’의 강요로 바뀌는 순간, 제도의 정당성은 흔들린다. 드라마가 던진 불편한 질문은 그래서 상식적이다.
드라마 속 전개와 시청자 반응
극 중 팀은 정산 문제의 실체를 추적하며 ‘모성’의 외피 뒤에 숨은 사적 이익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전개는 빠르지만 단선적이지 않다. 가족 간 신뢰가 무너질 때 법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이 고민을 의도적으로 길게 끌고 간다.
시청자 반응은 두 갈래로 갈렸다. “가족 문제를 공개의 장으로 끌어내는 게 과한 설정 아니냐”는 시선과, “현실에선 그 정도가 되어야 겨우 바뀐다”는 의견. 다만 공통분모가 있다. 친족상도례가 낯설 정도로 오래된 감수성 위에 서 있다는 자각이다.
현실 법제의 변화 흐름
제도는 한 번에 뒤집히지 않는다. 다만 최근 수년 사이, 가족 내 재산범죄와 아동·노인 등 취약한 가족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가해에 대해서는 사회적 시선이 급격히 달라졌다. ‘가족 프라이버시’보다 ‘피해 회복’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입법과 사법 영역에서도 논의는 계속됐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친족상도례의 적용 범위와 요건을 지금 시대에 맞게 조정할 것인가. 둘째, 형사처벌의 문턱을 낮추는 대신 화해·회복 중심의 절차를 어떻게 정교화할 것인가. 제도를 없애느냐 마느냐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피해자 보호 중심’의 재설계를 향해 논의가 이동 중이다.
실제 사례로 보는 쟁점 포인트
1) 가족기업과 법인 자금
가족이 이사·대표로 얽힌 법인에서 회사 자금을 ‘가족 비용’으로 사용하는 관행이 문제다. “우리 돈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반복되면 업무상 횡령·배임 이슈로 비화한다. 이때 친족상도례가 방패로 작동하면, 피해자(다른 주주·형제·배우자)는 법적 대응의 동력을 잃기 쉽다.
2) 연예 산업의 특수성
연예인의 매니지먼트와 회계는 ‘신뢰’ 위에 선다. 보호자이자 대표인 가족이 정산을 전담하면 투명성 검증이 느슨해진다. 드라마가 그린 장면은 과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업계에서도 회계 분쟁은 주기적으로 터진다. 중요한 건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업무라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는 사실이다.
3) 상속·증여와 생활비의 경계
현금 인출·카드 사용이 생활비인지, 무단 유용인지가 다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 내부 합의의 흔적, 즉 계좌 이체 메모·공동카드 약정·가계부 기록·메신저 대화가 중요한 근거가 된다. 기록은 감정의 논쟁을 ‘사실’의 논의로 바꾸는 유일한 언어다.
피해자 관점에서 본 체크리스트
가족 간 재산 분쟁을 겪는 순간, 감정이 먼저 올라온다. 하지만 몇 가지 단계를 차분히 밟아두면 이후 선택지가 넓어진다.
- 증거의 촘촘함: 통장 내역, 카드 사용처, 메신저·이메일, 녹취(법 범위 내), 회계장부를 시간순으로 정리.
- 관계의 재정의: 가족과 업무가 겹치는 경우, ‘구두 합의’를 문서화해 두면 분쟁의 성격이 바뀐다.
- 피해의 범주화: 금액, 기간, 반복성, 타인의 공모 여부를 구분해 기록. 민사·형사 대응의 기초가 된다.
- 제3자의 관여: 회계사·노무사 등 전문가의 ‘팩트 체크’만으로도 사안이 급격히 선명해진다.
- 2차 피해 방지: 가족 내 왕따·비난·경제적 압박은 또 다른 피해다. 커뮤니케이션을 기록하며 차단선을 세운다.
가족기업·연예 산업에서의 리스크 관리
투명성이 신뢰를 만든다
- 이사회·주주에게 정기 보고: 간단한 월간 요약이라도 일관되게.
- 결재 라인의 이원화: 가족 간에도 승인과 집행을 분리.
- 업무용·개인용 계정 분리: 계좌·카드·클라우드 저장소까지 철저히.
- 연예 매니지먼트: 정산서 표준 템플릿·외부 회계 검토를 최소 분기 1회.
갈등이 보이면, 룰부터
규정이 없으면 감정이 규정이 된다. 사내규정·가족합의서·비밀유지약정(NDA) 등 기본 문서를 먼저 세워두면, 갈등이 생겨도 절차가 감정을 대신한다.
형사 외 대안: 민사·합의·중재
친족상도례가 형사의 문턱을 높였던 만큼, 현실적으로는 민사 절차가 중요한 회수 수단이었다. 합의와 중재도 유의미하다. 중요한 건 ‘합의의 언어’다. 감정적 비난 대신 사실 확인, 책임 범위, 변제 일정, 재발 방지 조항을 구조화할 것.
- 민사 청구: 부당이득반환, 손해배상, 가사소송(재산분할) 등 사안별로 경로가 다르다.
- 중재·조정: 제3자 앞에서 합의문을 남기면, 추후 이행을 강제하기 쉬워진다.
- 디지털 포렌식: 삭제된 메시지·이메일·클라우드 로그는 종종 결정타가 된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
드라마가 던진 공은 이미 관객을 떠났다. 제도는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 친족상도례가 조정된다면, ‘대체 장치’가 필수다. 화해 중심 절차를 강화하고, 취약한 가족 구성원을 별도로 보호하는 세부 규정이 촘촘해야 한다.
또 하나, 업계별 표준 규범의 확산이 필요하다. 연예, 체육, 인플루언서 산업은 가족 매니지먼트가 흔하다. 표준 정산서, 외부 감사, 이해상충 신고 같은 최소 장치를 일상화하면, 법의 빈틈을 업계 규범이 메울 수 있다.
정리: 제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친족상도례를 둘러싼 논쟁은 사실 간단하다. 제도는 약한 쪽을 보호해야 한다. 그 ‘약함’이 공동체의 평온이든, 피해자의 회복이든, 시대마다 무게추는 달라진다. 지금의 질문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누군가의 고통을 가리는 장막이 되어도 되는가.”
‘프로보노’는 허구의 이야기로 시작해 현실의 문장을 고쳐 읽게 만든다. 시청률 그래프보다 기억에 남는 건, 국정감사장에 선 인물들의 단호한 얼굴이다. 제도가 바뀌든, 관행이 바뀌든, 최소한 하나는 분명해졌다. 봐줄 것이 있고, 못 봐줄 것이 있다. 그 선을 또렷이 긋는 일, 이제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