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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판결 없어도 범죄수익 환수 독립몰수제 속도전 시작됐다

2025년 10월 23일 · 19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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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회복을 늦추는 ‘유죄판결 선(先) 몰수 후(後)’ 관행, 바뀔 수 있을까. 캄보디아 사태로 드러난 해외·초국가적 범죄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독립몰수제가 국회 논의 테이블의 중심에 올랐다. 핵심 원리부터 쟁점, 해외사례까지 차분히 정리했다.

독립몰수제 한 장 요약

독립몰수제는 말 그대로 ‘형사 유죄판결과 독립된 몰수’다. 피고인의 유무죄 판단과 별개로, 범죄로부터 발생했거나 범죄에 사용된 재산을 법원의 심리를 거쳐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뜻한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공소 제기가 불가능하거나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범죄수익’으로 인정되면 환수한다. 둘째, 사망·도피·소재불명·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형사재판이 어려운 경우에도 재산 자체를 대상으로 판단한다.

이 제도는 과거 대형 불법 비자금 환수 논의에서 공감대가 형성됐고, 최근에는 해외에서 벌어진 한국인 대상 범죄로 인해 국민적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요지는 간단하다. ‘범죄자를 기다리느라 피해자 회복이 뒤로 밀리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왜 지금 독립몰수제인가

초국가적 범죄는 속도가 빠르다. 피해 금전은 순식간에 전자지갑, 환치기, 페이먼트 게이트웨이,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국경 밖으로 사라진다. 주범을 특정하고, 송환하고, 유죄판결을 확정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피해자 재산 회복은 늘 뒷순위로 밀린다. 이 공백을 메우겠다는 것이 독립몰수제의 취지다.

특히 보이스피싱·랜섬웨어·가상자산 스캠 같은 디지털 기반 범죄는 범인 신원과 실물이 분리되어 있다. 계정과 주소가 국적을 넘나들고, 관리자는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이름이 아닌 ‘흐름’을 따라 환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현 제도의 한계와 피해자 지연

현행 원칙은 명료하다. 몰수·추징은 형벌의 보완적 성격이므로 공소제기 및 유죄판결이 전제된다. 문제는 이 사이에 벌어지는 시간 싸움이다. 범죄수익은 흔적을 지우며 회계 구조를 바꾸고, 제3자 명의·차명 계좌로 옮겨 다닌다. 피해자는 유죄 확정까지 사실상 ‘기다림의 형벌’을 받는다.

해외 도피·사망·소재불명 같은 변수는 늘 존재한다. 범죄자 신병을 확보해도 국제 공조, 증거 번역, 해외계좌 추적 등 절차가 겹겹이 이어진다. 그 사이 피해금은 더 멀어진다. 피해자 관점에서 보면 ‘이미 잃은 돈’이 아니라 ‘돌려받을 시간을 잃는’ 상황이다.

핵심 문제: 형사판결 중심 구조가 현실의 자금 이동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 독립몰수제는 판단의 축을 ‘사람’에서 ‘재산’과 ‘자금 흐름’으로 이동시켜 간극을 줄이려는 시도다.

독립몰수제의 작동 방식

1) 대상과 범위

독립몰수는 범죄로 취득한 이익(직접·간접), 범죄에 제공된 도구·자금, 그 대가 또는 대체재산까지 폭넓게 본다. 예컨대 피해금으로 매수한 가상자산, 환전된 스테이블코인, 명의신탁 부동산, 제3자 계좌로 이동한 금액 등 ‘변형·대체 자산’이 포함된다.

2) 절차와 증명 기준

형사 유죄판결이 아닌 별도의 몰수절차를 통해 법원의 결정으로 집행된다. 통상 검찰·수사기관이 신청하고, 피신청인은 적법 절차에 따라 다툴 수 있다. 증명의 문턱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형사기준이 적용될 수 있으나, 입법 설계에 따라 ‘우월한 개연성’ 등 민사에 가까운 기준을 혼합하는 국가도 있다. 중요한 건 권리구제 장치다. 이해관계인은 소명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며, 몰수 범위는 범죄 관련성에 한정돼야 한다.

3) 보전과 추적

몰수 결정을 실효적으로 만들려면 사전 ‘보전명령’이 필수다. 금융계좌·부동산·가상자산 지갑을 신속히 동결해 추가 은닉을 막는다. 이때 핵심 도구가 ‘추적 가능성’이다. 트래블룰 정보, 체인 분석, 금융정보분석원(FIU) 연계, 국제공조 채널(인터폴, 에그몬트 그룹 등)을 빠르게 엮어 증거의 연속성을 확보한다.

실무 팁: 피해 신고 단계에서 계좌·지갑 주소·트랜잭션 해시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확보하면 보전명령 속도가 빨라진다. 초기에 놓친 정보는 추적 비용을 급증시킨다.

쟁점 체크리스트 법치와 인권의 균형

사유재산 침해 우려

유죄판결 없이 재산을 박탈한다는 점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부른다. 따라서 입법 단계에서 ‘범죄 관련성 입증 책임’을 국가가 부담하고, 제3자 선의취득 보호, 과잉몰수 금지, 신속한 불복절차를 반드시 명문화해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과의 조화

독립몰수제는 ‘사람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범죄로 오염된 재산의 회수’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다만 실질적으로 제재 효과가 있다는 지적을 감안하면, 절차적 통제와 요건의 엄격함은 형사에 준하는 수준으로 설계하는 게 안전하다.

입증 곤란과 남용 방지

광범위한 자금 흐름을 묶으려다 보면 추정에 기대는 유혹이 생긴다. 데이터 기반의 체계가 필요하다. 금융·가상자산·국제송금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알고리즘 판단을 그대로 쓰지 않고 사람 검증을 거치게 하는 이중 안전장치가 요구된다. 통계적 연관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거래 내역과 행위자의 의도를 연결 지을 수 있는 객관적 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해외사례 비교로 본 현실 해법

영국의 민사몰수·자산동결

영국은 범죄수익법(POCA)을 통해 유죄판결과 분리된 민사기반 몰수와 계좌동결명령(AFO)을 운영한다. 표준 증명 수준은 ‘개연성의 우위’로, 자산이 합법적 출처가 아니라는 합리적 근거가 있으면 동결·몰수를 시도한다. 대신 법원 심문과 항변권 보장이 촘촘하다.

이탈리아의 예방적 몰수

마피아 자산에 대해 ‘사회 위험성’을 근거로 한 예방적 몰수를 광범위하게 인정한다. 범죄 조직 범위가 넓고, 가족·측근 명의의 재산도 대상에 포함한다. 다만 우리 법체계에 그대로 이식하기엔 인권 논란이 커, 한국형 설계에서는 절차 보장을 강화하는 쪽이 현실적이다.

미국의 자산몰수 제도

형사·민사 몰수를 모두 운용한다. 민사몰수는 ‘재산 자체’를 피고로 삼는 소송 형식이 특징이다. 남용 사례 비판도 컸지만, 최근엔 무고한 소유자 보호(innocent owner defense)와 투명성 요건이 강화됐다. 한국도 제3자 보호 규정을 명확히 두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피해자 회복을 앞당기는 실무 과제

1) 신속 동결과 우선 회복

보전명령 후에도 돈이 ‘묶여만’ 있으면 의미가 반감된다. 분배 절차를 간소화하고, 피해자 중심으로 우선 반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소액 다건 피해가 많은 디지털 범죄 특성을 고려해 집단적 확인 절차와 전자적 배분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효율적이다.

2) 가상자산 실무 역량

가상자산은 네 가지가 관건이다. 주소 식별, 믹싱 회피, 체인 상 거래 관계도 분석, 해외 거래소 협조다. 수사기관·금융기관·거래소 간의 표준 API와 긴급 동결 요청 프로토콜을 마련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한 체인상 압류 후 보관·처분 규정도 세밀하게 마련해야 한다.

3) 국제공조의 속도

독립몰수는 국내법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상호법률원조(MLA)와 자산반환 협약을 촘촘히 연결해야 한다. 요청양식의 표준화, 번역·공증 간소화, 범죄수익에 대한 상호 승인 절차가 실무의 병목을 줄인다. ‘누가 갖고 있든, 어디에 있든’ 환수하겠다는 선언은, 결국 공조의 속도로 증명된다.

캄보디아 사태가 남긴 숙제

이번 사건은 세 가지를 드러냈다. 첫째, 범죄수익은 법정보다 빠르다. 둘째, 피해자는 절차의 늦음을 감당하고 있다는 점. 셋째,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일수록 ‘사람 중심’ 제도는 쉽게 멈춘다. 독립몰수제는 이 세 문제를 동시에 겨냥한다.

다만 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않는다. 증거 수집의 전문화, 관계 기관 간 정보 공유, 외교·사법 공조 채널의 상시 운영 없이는 제도는 껍데기에 그친다. 결국 실행력의 문제다. 제도, 사람, 기술이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질문과 답변 오해 바로잡기

Q. 유죄판결 없이 몰수하면 과도한 국가권력 아닌가요?

A. 재산권 제한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법원의 심리, 엄격한 입증, 불복 절차, 제3자 선의 보호, 과잉금지 원칙을 결합해 견제 장치를 촘촘히 두는 것이 전제다. 핵심은 ‘신속하지만 절차적으로 공정한’ 균형 설계다.

Q. 제3자 계좌로 넘어간 돈도 가능한가요?

A. 범죄수익의 대체·혼합·분할을 포함하는 설계를 택하면 가능하다. 다만 선의의 제3자가 입증되면 보호해야 한다. 거래 경위, 대가의 존재, 시장가치 등을 종합해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Q. 가상자산은 동결해도 가격 변동이 큰데요?

A. 변동성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동결 후 일정 요건 하에 법원 허가를 받아 스테이블코인 전환 또는 현금화 보관을 허용하는 방안이 해외에서 사용된다. 우리도 보관 지침과 감사를 정교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리 앞으로 무엇이 달라지나

독립몰수제가 도입되면, 피해자 관점에서 가장 큰 변화는 ‘시간’이다. 유죄 확정까지 기다리지 않고 범죄수익을 미리 묶고 돌려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수사기관과 금융기관은 초기 대응의 무게 중심을 ‘가해자 검거’와 함께 ‘자산 보전’으로 나누게 된다. 국제공조의 상시화는 덤이 아니라 필수 요건이 된다.

물론 제도는 디테일에서 성패가 갈린다. 재산권 보호와 신속 환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증명 기준, 불복 구조, 제3자 보호, 가상자산 처리, 국제공조 절차까지 모두 맞물려야 한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범죄로 얻은 이익은 누구의 손에 있든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 피해자 회복이 법치의 마지막 절반을 완성한다.

덧붙임: 용어 정리 — 몰수는 범죄 관련 재산의 국가귀속, 추징은 그 가액을 금전으로 환수하는 절차다. 독립몰수제는 이 둘을 유죄판결과 분리된 별도 절차로 가능하게 하자는 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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